Ariadné Jerem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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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1 20:12
파이널판타지14 빛의 전사

They’re watching you even when you are not looking at them.
영웅은 그 삶에 비해 부드러운 조형을 지녔다.
얼굴을 찢어놓은 흉터마저 타고난 인상은 훼손하지 못했다. 쉽게 붉어지는 흰 뺨, 나긋한 말씨와 행동, 잉크와 종이 냄새. 이토록 악의에 그슬리기 쉬운 것들을 모아 시대가 한 명의 인간을 편찬했다. 뭇 사람은 낱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의 행간에 숨은 철과 불의 냄새를 맡는다. 선량하고 이타적인 모험가. 한 몸으로 일만의 적을 능가하고 여러 차례 세상을 구한 자.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아 장인으로서도 유명한──갖은 피상을 거쳐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그들은 깨닫는다. 제가 그를 읽는 동안, 그 역시 아득한 시선으로 자신을 읽고 있었음을. 첨부 파일
© KD
아리아드네 제레미아Ariadné Jeremiah | 북해 엘레젠족
인터섹스 젠더리스 they/them | 약 40세
외관 청년기의 끝에 접어든 이 엘레젠족의 외피는 부계의 영향으로 귀가 짧고 얼굴은 실제보다 약간 젊어 보인다. 그 홀로 시간신 알디크의 자비를 받고 있는지, 아니면 감정 기복과 표현이 극히 적기 때문인지. 모험가는 안면근육을 크게 쓰는 일 없이 항시 봄바람을 느끼는 이처럼 엷게 웃고 있다. 이마와 콧대, 턱선은 곧고 입가와 눈매는 완만한 곡선을 지닌 얼굴. 특히 속눈썹이 길고 눈꼬리가 내려간 두 눈은 빛을 잃어 눈꺼풀을 닫고 있을 때가 많지만, 희게 바래어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를 드러낼 때면 첫눈에 유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어디 무르기만 하여도 좋은 삶이었던가? 옛 양식으로 지어진 키톤에 팔다리를 감싼 검은 갑주, 칠흑의 대검은 그가 전장에서도 가장 앞에 서는 위치임을 암시한다. 종족 평균을 웃도는 훤칠한 몸은 거쳐온 여정을 증명하듯 준수한 체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 귀에서 오른쪽 관자놀이를 향해 거칠게 할퀸 흉터 외에는 뚜렷한 상흔이 없으니, 혹자가 까닭을 묻자 스스로 치유 기술을 익혔다더라. 휴식할 때에는 특별히 몸을 가리기만 하거나 드러내기만 하지 않고 그때그때 편한 차림을 한다. 애용하는 물건은 알라미고 해방전 당시 어느 해방군에게 선물받은 새파란 알라미고식 가운으로, 이것을 입고 있으면 푸른 잉크로 얼룩덜룩한 곧은 손끝이 무장 상태일 때보다 눈에 띈다. 푸르스름한 보랏빛 머리칼은 꼼꼼히 돌보지 않아 일 메그의 화원처럼 다소 무질서하며, 상황에 따라 길어지게 두었다가 필요하면 미용사의 손을 빌리는 식으로 해결한다. 제1세계에서의 경험과 느릿한 노화로 절반 즈음은 새하얗게 바랬다. 성격 첫인상에 부합하는 너그러운 성품을 지녔다. 인내심이 깊고 여러 각도에서 사고하기에 부당한 대우나 불미스러운 상황을 접해도 곧바로 반발하지 않는다. 눈물흘리는 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분노하는 자의 손을 잡는다. 그린 듯한 ‘영웅’의 성정이라고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여기에는 평등한 존재에게 보내는 공감이 담겨있지 않다. 모든 자비의 본질은 만사를 부감하는 시선으로 베푸는 시혜이다.
그의 본질은 두 가지 맥락으로 설명된다 Writer of Histories¹ 기록에 대한 불변의 욕구는 감정이 희박한 그의 유일한 열정이다. 수려한 정경이든 처절한 전장이든 한결같이 사상事象을 문자로 치환해 지면에 새긴다. 상황, 장소, 심지어는 사용할 손의 방향마저도 가리지 않는다. 필체만큼 가독성이 높은 문장은 극히 건조하여 그 자신의 자아와 인격마저 배제한 것처럼 보인다. 왕족을 찬미하지 않고 난민을 동정하지 않는다. 경사에 환희하지 않고 재해에 탄식하지 않는다. 승전을 거둔 장수에 대해 썼다면 그가 죽인 자의 가족에 대해서도 쓴다. 목적이나 이유를 물으면 늘 같은 답이 돌아온다. 역사를 남기는 거야. 너희는 이룬 것을 쉽게 무너뜨리고 잊거든. 기민한 사람이라면 그 문장의 주어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너희? 모험가는 친절하게 긍정한다. 저만치 앞서 걷다가 잠깐 돌아본 사람처럼. 너희. Pantocrator² 그의 뇌는 한 번 습득한 정보를 결코 지우지 않는다. 왜곡도 훼손도 없다. 빛의 가호나 초월하는 힘과도 구별되는 병증의 일종이다. 모험가는 모든 문명의 구성원을 긍정하고 애호한다. 생명과 온기과 존엄을 내포한 인격체가 아니라, 언젠가 완결을 맞이하는 한 편의 ‘이야기’로서. 아리아드네에게 이 세상은 하나의 장서관이며 지상에 인간은 오로지 자신 한 명뿐이다. 그러므로 저 이외의 존재를 내면에 기록하고 다음 장으로 이어지도록 비호한다. 쌓아올린 모든 것이 언젠가는 반드시 폐허가 된다. 애틋한 한계를 가진 자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면 본래의 모습을 영구히 기억하는 장본인으로서 긍휼히 여기고 아낄 따름이다. 아득히 먼 옛날의 인간이 뜻한 바를 손 안에 빚어내 유지하려 했듯.
상세 (1) 이처럼 경험한 모든 것을 머릿속에 영구히 보관하지만, 어느 시점 이후로 시각 정보를 입력할 수 없게 되었다. 구 갈레말 제국의 폐태자 제노스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눈을 베여 육안의 시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야슈톨라 룰의 조언으로 사물의 에테르를 읽고 생김새와 구조를 추론하는 법을 익혀 일상 생활은 물론이고 전투에도 별다른 지장이 없다. 취미인 기록도 특수 제조한 종이와 잉크를 사용한다. 치료 기간 중 염려를 표한 동료들에게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별의 역사와 창세의 진실을 모두 읽었다. 그러니 이 눈으로 더 보아야 할 것은 어디에도 없어.” (2) 기록만큼은 아니어도 미식을 몹시 즐긴다. 의뢰 수행의 보수로 좋은 음식이나 술을 요구했다는 의뢰인들의 경험담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특별히 먹지 못하는 것도, 꺼리는 것도 없다. 헐값에 제 능력을 파는 법은 없지만 영웅이나 되는 모험가가 원하는 대가로는 다소 속물적이지 않는가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말을 입에 담는 이들은 그가 반생을 올드 샬레이안에서 살아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외에 좋아하는 것은 시대의 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자, 질 좋은 종이와 잘 다듬어진 펜촉, 오래되고 비밀스러운 책이나 서고. 사람 가운데에는 어린아이를 각별히 아낀다. 역사를 이어받을 세대이기 때문이다. (3) 떨어진 낱장 첫째 : 여행의 시작 올드 샬레이안의 유서 깊은 가문 ‘제레미아’의 로 태어났다. 제레미아는 기나긴 계보에 비해 거의 두드러지지 않는 존재감을 가진 일문이다. 그 시초는 하이델린에게 방주의 계시를 받고, 언젠가 인류가 우주를 방랑할 때 뿌리를 잊지 않도록 역사를 보존한 지식인이었다. 기록의 편향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일족이 평생을 금욕하고 갖은 유형무형의 쾌락을 멀리한다. 그 일환으로 언젠가부터 철학자 의회의 명부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않게 되어, 그 이래 종말에 대한 진실과 선조의 진의를 알지 못한 채 강박적으로 세계사를 수집해 왔다. 한 대를 오래 유지하고자 수명이 상대적으로 긴 엘레젠족 여성에게만 후손을 낳게 하는 구습을 유지하고 있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특수한 두뇌를 알아본 일족은 그를 ‘살아있는 책’으로 만들기 위하여 외부 접촉을 금하고 모든 일과를 역사 지식과 기록 기술 터득에 할애토록 지시했다. 인간사에 통달한 이들조차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아리아드네의 몸이 십대 중반에 이르러 일문 전원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때가 지났는데도 월경이 시작하지 않았고, 목소리는 낮아졌으며 뼈대와 근육이 필요 이상으로 자라났다. 이것은 ‘통상에 부합하지 않는 신체적 결함’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기록자로서의 가치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일문의 결론이었다. 가장 기대받았던 아이는 혈족의 적에서 이름이 지워졌다. 그러자 일찍이 일문과 절연한 그의 숙부가 아이를 거두어 데려갔다. 자유를 얻은 뒤에도 소년은 관성에 따라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썼다.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 빚어낸 이야기는 감정이 거세된 역사적 사실로서 끊임없이 주입되었다. 7세에 역대 에오르제아 통치자의 이름을 전부 대고, 10세에 모든 국가의 흥망성쇠를 읊었으며, 14세에는 현존하는 문화 대부분의 유래를 정확히 짚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간을 살아낸 인간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결여된 채로. 어느 날 라비린토스에 출입하던 조달꾼의 아이 두 명이 도시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창 너머로 아리아드네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혈족이 아닌 타인과의 첫 대화였다. 삶의 차이 탓에 처음에는 서로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그들은 곧 친해졌다. 젊은 역사가는 이 친교가 자신에게 편향을 심지는 않을지 내심 염려했다. 그러나 처음 겪는 타인의 친절과 온기가 점차 감도를 무디게 했다. 두 소년, 퀸시와 파멜라는 부모를 따라 올드 샬레이안에 올 때마다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친구를 찾아와 바깥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십수 년이 흘렀다. 두 벗은 세상을 누비는 모험가가 되어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아리아드네에게도 큰 경사였다. 본인의 생활도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누메논 도서관에 출입하거나 거리에서 만나는 학자들과 말을 섞는 정도로 발전했다. 친절하고 비상할 만큼 풍부한 지식을 가진 청년에게 학자들은 쉽게 매료되었다. 특히 사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그에게 자문이나 가르침을 청하기도 했다. 충만한 나날이었다. 카르테노에 추락한 붉은 별이 긴 겨울을 몰고 왔다. 안전한 방에서 종이와 펜을 든 자에게는 학살과 핍박 또한 역사적 사건, 기록의 대상에 불과했다. 그래야 했다. 29세의 아리아드네는 제국군을 막기 위해 전장으로 향하기 전 인사를 하러 온 벗들을 차마 만류하지 못했다. 유일한 연고자로서 부고를 전달받았을 때에도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분노와 슬픔, 복수심이 사고를 마비시켰다. 그는 삼 일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들을 애도했다. 고인이 남긴 추억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꺼내어 되새기다 문득 잠이 든 때였다.
아리아드네는 하늘에서 유성이 쏟아지는 꿈을 꾸었다.
떨어진 낱장 둘째 : 열네번째 자리의 주인 ‘뭐든지 영원히 기억한다고? 촌극이 따로 없군!’ 아씨엔 에메트셀크는 혹평했다. 자신의 참된 모습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에게 영원이라는 수식이 가당키나 한가? 그가 기억하는 온전한 영혼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단 하나뿐이–라고 당시의 그는 믿었–다. 14인 위원회의 마지막 구성원 아젬, 카론Χάρων. 하데스의 손아랫형제인 그는 군데군데 형을 닮거나, 닮지 않은 인물이었다. 오늘날의 편협한 인류는 피를 나누었으니 어찌 닮지 않겠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두 사람이 혈연인지 아닌지 캐묻는 사람이 없었고 당사자들에게도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길고 새하얀 머리칼에 한낮의 태양처럼 밝은 금빛 눈. 호쾌하고 때로 익살스러운 면모에 모두 그를 기인으로 여기면서도 반가워했다. 불쑥 떠났다 돌아와서 휘틀로다이우스와 하데스를 앉혀놓고 여행담을 늘어놓는 한가로운 때를 그들 모두가 좋아했다. 아젬이 되기 전 카론의 유일한 관심사는 죽음, 당시 말로 ‘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 삶을 마쳐도 좋겠다고 긍정하게 하는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종지부는 언제 주어지는가. 그는 특기인 소환 술식과 전송 술식을 이용해 세계를 누비며 별로 돌아가리라 마음 먹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주의깊게 들었다. 때로는 영혼의 벽을 거두고 상대와 하나가 되는 –하데스가 보기에는–기행조차 서슴지 않았다. 14인 위원회를 사임하는 자가 있다는 소문이 아모로트를 넘어 전역에 퍼졌을 때 카론은 소문의 주인공을 찾아가 같은 질문을 했다. “당신은 이제 별로 돌아가실 겁니까? 삶은 만족스러우셨나요?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런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죠?” 질문을 들은 당대의 아젬, 베네스는 그 자리에서 카론을 자신의 후임으로 임명했다. 떨어진 낱장 셋째 : 살아있는 기억